[K STAR 이보람 기자]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찍은 기분이랄까. 극한 감정들이 너무 많아서, 무대에 내가 올라가면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이 마치 '자 한 번 해봐. 너 연기 20년 했다며'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진: 별만들기이엔티)

김정은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연출 김근홍/극본 하청옥)>에서 강력계 형사 출신 식당 주인이자,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정덕인' 역을 맡아 안방극장을 울리고 또 울렸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눈-코-입이 총동원된 표정, 이를 넘어 온몸으로 표현하는 김정은에게는 이미지 관리에 바쁜 어느 여배우의 모습은 없었다. 단지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 가슴이 미어진 '어머니'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기가 막히는 표현력 덕분에 주말 안방극장은 '정덕인'에 이입된 시청자들의 "아이고", "그렇지", "잘한다" 등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MBC <여자를 울려(연출 김근홍/극본 하청옥)>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김정은은 극 중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공감을 끌어내는, 설득력이 강한 '똑소리'나는 배우였다.

Q.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정덕인'이라는 인물로 살았는데 종영 소감은 어떤가.

"모든 촬영을 끝낸 후 화려한 네일을 받고, 와인도 마셨다. 그런데 아무리 뭘 해도 정덕인이다(웃음). 밥집 아주머니가 씻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직 실감을 못 하겠다. 오늘 인터뷰를 끝내고 또 몇 주가 지나야 '이제 진짜 끝났구나!' 싶을 것 같다.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행복했다."


Q. 모니터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전체를 보면서 '아 이랬구나' 이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번 주는 이런 감정 정리하고 다음 주는 이렇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강했다."


Q. 이번 작품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다고 하던데.

"누구한테 이렇게 많이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만 연기를 한다는 게 어려웠다.  매 장면마다 대본을 받고 나서 '어떡하지, 어떻게 연기하지?' 하는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감독님과 주변 스태프들에게 솔직하게 많이 물어봤다. 같이 연구하고 조언을 받으면서 촬영했다."


Q. 오열하는 장면이 많았다. 베테랑 배우지만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감독님이 울지 말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정덕인 만큼 강하지 못한 것 같다. 버티고 싶은데 이미 울컥 울컥하고 있으니까. 촬영 중 감독님이 '여기서 울지 말라고 그랬잖아' 하면 '알았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하고 다시 연기를 하는 거다. 감정 연기를 하다 보면 김정은은 울고 있다. 너무 울어서 탈이었다."


Q.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학교 폭력 실태에 분노하고 오열하는 신에서는 어떤 생각이 강했는지.

"정신을 확 놓고 연기를 해야 되는데 '너무 흉하면 어떡하지?', '괜찮을까?', '시청자들이 쟤 왜 저래?' 이럴까 봐 걱정이 많았다. 나도 여배우다. 그런데 감독님이 '괜찮아 네 뒤에는 몇 천만의 엄마들이 있어'라고 말을 해주셔서 용기가 생겼다. 교무실 장면을 예로 들면, 내가 엄마이고 내 아들이 죽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이런 생각으로 부딪히니까 다 할 수 있겠더라.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다 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었다"



(사진: 별만들기이엔티)

Q. 극 중 액션 장면도 많았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액션 자체가 재미있게 짜졌다. 합(일종의 형식)도 잘 외운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풀샷 같은 컷은 대역 배우가 찍고, 타이트 컷은 내가 찍었는데 둘이 아주 잘 맞아서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다. 완성도 있게 하려고 노력 많이 했다."


Q. 스커트를 입고 액션 장면을 연기하는 게 다소 특이했는데.

"다들 드레스 입고 액션하냐고 웃더라. 형사가 바지를 입고 싸우는 게 당연한데, 옛날 황비홍을 보면 액션을 할 때 치마같이 펄럭 펄럭거리지 않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다가 치마가 펄럭이는 모습을 마치 트레이드마크처럼 선보였던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치마를 입고 많이 싸웠는데, 사실 치마를 입고 액션을 하는 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더 편했던 것 같다."


Q. 송창의와 알콩달콩한 애정 신이 많지 않았는데.

"극 초반 송창의 씨의 코믹한 모습이 좋았다. 사채업자들이 찾아왔을 때, 다쳤을 때, 엎어달라고 하는 모습들이 귀엽게 망가지는 것 같아서 정말 귀여웠다. 그동안 못 봤던 송창의 씨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많은 분들이 그런 장면을 많이 보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덕인이와 알콩달콩한 모습을."


Q. 드라마 인기가 높았던 만큼 연장을 기대한 시청자가 많았다. 하지만 예정대로 40부작으로 종영했는데.

"나도 연장 제의가 있을 줄 알았다. 제의가 들어오면 '포상 휴가 같은 거로 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진이 굉장히 쿨하더라.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10개도 더 할 수 있지만 그러다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만하지 않았을까?(웃음).


Q. 마지막 회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아름다웠다. 당시 에피소드는 없나.

"잠을 하나도 못 자고 찍었던 신이다. 기억나는 건 김해숙 선생님이 미친 듯이 울었던 것밖에 없다. 처음에는 우리 선생님 연기가 역시 훌륭하다 했는데, 너무 우셔서 '선생님 왜 이렇게 우세요'라고 물었더니, '네가 너무 예뻐서'라고 대답을 하시더라. 정말 많이 우셨다."


(사진: 별만들기이엔티)

Q. 김정은이 실제 '정덕인'이었다면 '강진우'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용서 못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랑을 완전히 떨쳐내기도 힘들 거 같기도 하다. 시놉시스를 받고 나서 볼 때는 어떻게 용서해 하겠지만, 드라마를 끝내고 나서는 또 아닌 것 같다. Yes or No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덕인과 진우는 훌륭한 사랑을 했다. 정말 사랑하니까 내가 떠날 게. 이렇게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커플이라서, 이런 성숙한 사랑이라면.. 글쎄, 나는 안 될 것 같다(웃음)."


Q. <여자를 울려>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덕인이는 드라마에서 용서를 했지만 나는 용기를 얻었다. 3년의 공백 동안 이 드라마를 시작할 때 약간 무모한 연기인 것 같아서 무서웠다. 하지만 덕인이를 연기하면서 무서울 게 없어졌다. 뭘 한들 뭐가 두렵겠는가. 아줌마 파워 이런 게 생긴 것 같다. 여유로움도 생겼다. 예전에는 살찌는 걸 못 견뎌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내 나이에 여유로울 수 있는 아줌마의 기운 같은 게 들어온 것 같다. 6개월 동안 아줌마로 살았는데 뭘."


이보람 기자, brlee5655@gmail.com , 기사의 저작권과 책임은 K STAR에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케이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