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TARNEWS 김유진 기자]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 게임’ 열풍 속 조용히 흥행을 자축하는 배우가 있다. 참가자 187번으로 활약하다 ○, △, □ 가면맨 역할까지 1인 다역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촬영장을 누볐다. 대사 한 줄 없이 ‘오징어 게임’ 여정을 끝까지 함께한 숨은 주역, 배우 나조은이 그 주인공이다. 

큰 기대 없이 출연한 작품이 커다란 인생작으로 돌아왔다. ‘오징어 게임’ 인기에 지인들은 이정재·박해수가 아닌 나조은을 보기 위해 재시청하고, 이름 모를 한 외국인 팬으로부터 DM(개인 메시지)도 받았다. 생각지 못한 주변 반응이 아직도 얼떨떨하다는 그를 최근 가양동 IHQ 사옥에서 만났다. 4박 5일 촬영 예정이던 단역 배우가 어쩌다 엔딩까지 함께하게 된 건지, 그 속사정과 함께 ‘오징어 게임’ 속 여러 비하인드를 들어봤다.

“황동혁 감독님 작품이라고 해서 처음에 고민 없이 출연을 결심했죠. 내용이 흥미로워서 ‘이건 무조건 국내 넷플릭스 1위는 하겠다’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흥행할 줄은 전혀 몰랐어요.”

처음 나조은이 제안받은 역할은 456명 참가자 중 한 명인 187번. 예정된 촬영 스케줄은 4박 5일이었다. 첫 촬영은 ‘오징어 게임’ 속 순서와 같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장면으로, 촬영은 실제 게임처럼 진행됐다. 조금이라도 움직인 사람은 스태프가 체크 후 사망 선고를 내렸다고.

“거대한 벽을 세운 넓은 운동장에 그 많은 인원을 진짜 풀어놨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느낀 가장 더운 날씨였는데 한 번 움직여서 죽으면 촬영 내내 처음 죽은 자세 그대로 누워있어야 했어요. 그늘 하나 없이 해가 계속 떠 있었는데, 보통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죽으니까 얼굴 한쪽 면만 타는 거예요. (웃음) 실제로 화상 입은 출연자들은 현장에서 의료진이 치료해줬어요.” 

 

잔인한 게임 장면 속 거대한 세트는 동심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콘셉트로 꾸며져 '오징어 게임' 속 관전 포인트로 손꼽힌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 공간들은 보는 내내 기괴한 느낌을 들게 하는 주된 요소였다. 나조은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게임이 바뀔 때마다 다음 세트장이 최대 관심사였다”며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하얀 숙소 장면이 CG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거기도 실제 제작한 세트장이에요. 뒤로 갈수록 침대가 높아지는데, 가장 높은 침대는 아파트 4층 높이래요. 거기 배정된 인원들은 항상 조심히 올라가고 그랬죠. 또 그 침대가 잠이 잘 와서 점심 먹고 거기서 잠깐 주무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웃음) ‘줄다리기’ 게임 장소도 실제로 만든 세트인데 정말 잘 만드신 것 같아요. 세트장 들어가면 항상 ‘와’ 하고 탄성부터 나왔어요.” 

‘오징어 게임’ 출연 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어디서 죽었어?’라고. 보려고 애써야(?) 발견할 수 있는 187번의 존재감에 대해 나조은은 “사실 참가자로는 출연했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그나마 참가자들이 서약서에 사인하는 장면에서 이정재·오영수 선배님 사이로 제가 딱 잡힌다. 거의 ‘월리를 찾아라’ 수준이다”라며 웃었다.

보통 한 장면을 여러 번 나눠 찍기 때문에 한번 화면에 잡히면 계속해서 한 배우가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 나조은도 대사 한마디 없는 단역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이 눈에 띄는 바람에 계속해서 주연 배우들 곁에서 촬영을 이어갔다. 결국 예정된 일정 4박 5일을 훌쩍 넘겼고, 187번은 ‘구슬치기’ 장면에서 모습을 감춘다. 심지어 나조은이 다른 촬영 스케줄로 자리를 비운 날, 탈락자 촬영을 진행한 스턴트맨이 하필 187번 옷을 입고 총에 맞은 것.

“다음 촬영 때 갔더니 스태프들이 제 캐릭터가 죽었다면서 상황을 설명하시더라고요. 되게 아쉬웠는데 제작진 분들이 가면맨 역할을 주셨어요. 오히려 그 후에 가면 쓰고 연기한 게 더 많아요. 지인들이 물어보면 안 죽고 가면맨으로 스카우트 됐다고 말했어요. (웃음) 가면맨이 아무래도 더 다양한 상황에서 연기할 수 있으니까 얼굴은 안 나오지만 저는 좋았어요.”


 

처음 단역 제안을 받았을 땐 별 기대 없이 ‘배우러 간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그는 “선배님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니까 재밌더라. 연기할 때 호흡 같은 걸 유심히 관찰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정재 선배님이 성기훈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할까 궁금했는데 ‘저 쌍문동 사는 성기훈이라고 하는데요’ 듣자마자 벌써 성기훈이 됐다는 걸 알았어요. 보통 배우들은 '레디' 사인을 받고 호흡을 시작하는데 이정재 선배님은 사인 들어오기 전부터 호흡을 이어가시더라고요. 촬영 안 할 때는 멋있게 계시다가 촬영 들어가면 바로 자신을 무너뜨리고 성기훈이 되는데.. 역시 '이정재는 이정재다' 싶었고, 정말 멋있는 배우라고 느꼈습니다.”

187번으로는 더위와 싸우고, 가면을 쓰고는 뱃멀미에 시달렸다. 힘들었던 만큼 얻은 것도 많다고. ‘오징어 게임’을 통해 연기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는 그는 시즌2 제작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다. 

“흥행을 떠나서 ‘오징어 게임’은 저에게 다시 연기를 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계기로 지금 계속 다른 작품들에 출연 중입니다. 연기 시작이 늦은 편이라 부족한 게 많다고 느껴서 역할 안 가리고 경험을 쌓고 있어요. 저만의 연기 색깔을 찾아서 류승범, 송새벽 선배님들 같은 독보적인 색깔의 배우로 활동하는 게 목표입니다. ‘오징어 게임’에 정말 감사드리고, 시즌2 제작 들어가시면 어떤 역할이든 불러만 주세요. 바로 달려갑니다. (웃음)”

케이스타뉴스 김유진 기자 jjin@ihq.co.kr [사진제공=나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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